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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YAL & NOBLE/영국

영국 왕실 소유가 된 러시아 제국 티아라 | 블라디미르 티아라 | 영국 왕실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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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티아라를 착용한 엘리자베스 여왕

오늘은 영국 왕실을 대표하는 티아라 중 하나인 <블라디미르 티아라>에 대해 얘기해 보도록 할게요! <블라디미르 티아라>는 원래 러시아의 "야심만만한" 마리야 파블로브나 대공비의 소유였습니다. 그녀는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이라는 대공국 출신으로 결혼 전에는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마리라고 불렸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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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마리

마리는 1854년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대공 프리드리히 프란츠 2세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엄마의 이른 죽음과 아빠의 거듭된 재혼으로 그녀에게는 형제만 11명이 있었고, 이것은 곧 그녀가 챙길 수 있는 지참금은 아주 적다는 것을 의미했죠. 마리에게 결혼이란 가문을 위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었고, 곧 작은 공국의 후계자인 알베르트 공자와 약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약혼을 한 마리에게 다시 오지 않을 커다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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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대공

바로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3남인 블라디미르 대공이 결혼 상대를 찾고 있었고, 마리를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이죠. 작은 공국은 비교도 안될 대제국이었던 러시아 왕실에 시집갈 기회를 마리는 놓치지 않았고, 바로 약혼자와 파혼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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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대공과 마리의 약혼 사진

그러나 그들은 결혼에 바로 골인하지는 못했습니다. 마리가 러시아 정교회로의 개종을 거부했기 때문이에요. 결혼은 3년이나 미뤄졌고, 결국 러시아 왕실은 그녀의 뜻을 존중해 주기로 합니다. 1874년 마리와 블라디미르 대공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녀는 결혼 후, 러시아에서의 이름을 증조할머니 옐레나 파블로브나 대공비를 기리는 "마리야 파블로브나"로 선택했지만, 애칭인 "미헨" 대공비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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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티아라

블라디미르 대공은 미헨 대공비에게 진주가 달린 맞물린 원 모양의 다이아몬드 티아라를 결혼 선물로 주었습니다. 왕실 보석 세공사 볼린(Bolin)이 제작한 것이었죠. 이 티아라는 블라디미르 대공비, 미헨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블라디미르 티아라>라고 불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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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헨 대공비

미헨 대공비의 주요 티아라 중 하나인 <블라디미르 티아라>는 위 사진처럼 유연해서 동그랗게 구부린 코로넷 스타일로 착용이 가능했고, 진주 드롭을 떼어낼 수도 있었습니다.

 

미헨 대공비는 보석 애호가로 유명했으며, 까르띠에의 주요 고객이기도 했습니다. 블라디미르 궁전을 방문했던 말보로 공작부인 콘수엘라는 "미헨 대공비는 당당하면서도 우아하고, 매력적이었어요. 식사 후에 그녀는 드레스 룸으로 날 데려가서 유리 진열장에 진열된 보석들을 보여주었죠. 그곳엔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루비, 진주, 터키석, 아쿠아마린 등 진귀한 보석들이 끝없이 있었어요."라고 회고했습니다.

 

1881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폭탄 테러로 사망하자 황태자였던 알렉산드르 3세가 즉위하였습니다. 새 황제의 아내, 마리야는 명랑하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사교계에서 큰 인기를 얻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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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티아라를 착용한 미헨 대공비

미헨 대공비는 자신의 거처 블라디미르 궁전에서 파티를 자주 열면서 동서이자 황후인 마리야의 사교계 라이벌로 부상했습니다. "야심만만한" 미헨 대공비와 남편 블라디미르 대공의 권력 쟁취를 위한 행보는 형 부부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왔을 거예요.

 

1894년, 황제 알렉산드르 3세가 병으로 숨지자 미헨 대공비의 조카 니콜라이 2세가 즉위하였습니다. 니콜라이 2세의 아내, 알렉산드라 황후는 미헨 대공비와 마리야 황태후와는 정반대로 내성적이고, 화려한 사교계 활동을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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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헨 대공비와 동서 마리야 황태후

결국 사교계는 여전히 미헨 대공비와 마리야 황태후의 차지가 되었죠. 덴마크 공주 출신인 마리야 황태후는 친정을 방문하기 위해 자주 자리를 비웠고, 그 덕에 미헨 대공비와 블라디미르 대공의 정치적 입지는 점점 커져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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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연방의회 개회식 그림 속 미헨 대공비(맨 왼쪽)와 알렉산드라 황후(맨 오른쪽)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의 유일한 아들인 알렉세이 황태자가 혈우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 황태자가 잘못되었을 경우, (미혼이었던 니콜라이 2세의 동생 미하일 대공을 제외하면) 위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미헨 대공비의 아들, 키릴 대공이었습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 미헨 대공비는 사교계를 주름잡으며 블라디미르 궁전을 러시아 귀족 사회의 중심지로 만들었죠. 사교계 명사인 미헨 대공비를 보고 사람들은 "대공비들 중 가장 위대한 대공비"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녀는 아들의 황위 계승에 자신의 종교가 문제될 것을 우려하여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하기까지 합니다. 개종을 거부해서 결혼이 미뤄졌던 일화를 생각해 보면 참 권력이란 게 무섭다는 생각이 드네요..ㅠㅠ

 

 

 

 

royal family
니콜라이 2세 일가

당시 러시아 제국은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습니다. 전쟁 패배 이후 더욱 심화된 경제난으로 인해 먹고살기 힘들어진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이자, 그 시위를 잔혹하게 진압하면서 러시아 왕실은 사람들의 지지를 잃어갔습니다. 또한 니콜라이 2세 일가가 신임하는 라스푸틴이라는 괴승에 의해 국정이 좌지우지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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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헨 대공비

1909년, 미헨 대공비의 남편 블라디미르 대공이 뇌졸중으로 사망하였고, 그로부터 5년 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습니다. 전쟁의 장기화와 러시아 제국의 여러 모순들이 기폭제가 되어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고, 니콜라이 2세는 퇴위하였습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미헨 대공비<블라디미르 티아라>를 포함한 자신의 보석들을 궁전에 숨겨둔 채 지방으로 피신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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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궁전

그 해 여름, 미헨 대공비의 아들 보리스의 친구인 알버트 스토포드는 대공비의 부탁을 받고 블라디미르 궁전에 몰래 잠입했습니다. 그는 대공비가 숨겨놨던 보석 244점을 단 두 개의 가방에 담고서 런던으로 돌아왔고, 보석들은 런던에 있는 대여금고에 보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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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헨 대공비

지방에 피신해있던 미헨 대공비는 니콜라이 2세 일가족과 황위 계승자였던 미하일 대공까지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이미 많은 황족들이 볼셰비키에 의해 처형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러시아를 떠나길 거부했는데요. 왕실 편인 백군이 볼셰비키와 내전 중이었고, 만약 백군이 승리한다면 아들 키릴이 러시아 황제가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자신이 러시아를 떠나면 아들의 왕위 계승에 피해를 줄 것이라고 생각했죠.

1920년 백군의 패색이 짙자 미헨 대공비는 결국 러시아를 떠나기로 결심하였고, 그녀는 러시아를 탈출한 마지막 로마노프 왕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힘든 탈출 과정은 그녀의 건강에 악영향을 주었고, 몇 달 후 세상을 떠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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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헨 대공비와 딸 옐레나 여대공

그녀의 화려한 보석들은 자식들이 나눠서 물려받았고, <블라디미르 티아라>는 그리스 니콜라오스 왕자와 결혼한 딸 옐레나 여대공이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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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옐레나 여대공, 동서 그리스 조피 왕비, 엄마 미헨 대공비

옐레나 여대공은 어지러운 그리스 상황으로 인해 망명길에 올라있었고,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엄마가 물려준 보석 몇 개를 팔기로 결심합니다. 그녀가 팔기로 결심한 보석 중엔 <블라디미르 티아라>도 있었죠. <블라디미르 티아라>는 나중에 자신의 막내딸 마리나의 시어머니가 될 한 인물에게 판매되는데요. 그 인물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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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티아라를 착용한 메리 왕비

영국 왕실 보석 콜렉터 메리 왕비(엘리자베스 여왕의 할머니)입니다! 이 당시 많은 유럽 왕실이나 귀족들이 몰락하였고, 메리 왕비는 그들이 망명하면서 가져온 보석들을 싼값에 구매하였죠. 1921년 메리 왕비<블라디미르 티아라>를 포함한 보석 두 점을 28,000 파운드에 구입했습니다. 사실 메리 왕비는 이전에 한번 <블라디미르 티아라>를 본 적이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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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독일 빌헬름 2세, 미헨 대공비,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 메리 왕비

1896년, 미헨 대공비와 메리 왕비 둘 다 작센-코부르크-고타의 공녀 알렉산드라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알렉산드라의 아빠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차남인 알프레드 왕자, 엄마는 러시아 알렉산드르 2세 황제의 차녀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이었기 때문에 알렉산드라의 결혼식에는 영국 왕실과 러시아 왕실 일원들이 총출동했었고, 거기서 메리 왕비<블라디미르 티아라>를 착용한 미헨 대공비를 보게 되죠. 그 당시 메리 왕비는 "대공비들 중 가장 위대한 대공비"라고 불렸던 미헨 대공비의 티아라가 자신의 것이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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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왕비는 왕실 보석상 가라드에게 이동하면서 크고 작은 손상들이 생긴 <블라디미르 티아라>의 수리를 맡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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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 드롭을 단 블라디미르 티아라

1924년에는 가라드에게 <블라디미르 티아라>에 에메랄드 드롭을 달 수 있도록 개조를 부탁하죠. <블라디미르 티아라>의 에메랄드 버전은 할 얘기가 좀 더 있어서 다른 게시글로 올릴게요! 오늘은 진주 버전에 대해서만 포스팅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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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1936년 아들 에드워드 8세의 대관식을 위해 인쇄된 기념 책자에 있던 사진이에요! (대관식은 에드워드 8세가 1년 만에 왕위를 포기해서 열리지 않았어요 ^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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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왕비는 방대한 보석 컬렉션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블라디미르 티아라>의 착용 사진이 꽤 있는 걸 보면 그녀가 좋아했던 티아라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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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시사회에서 엘리자베스 여왕

1952년 메리 왕비 사후 <블라디미르 티아라>는 손녀 엘리자베스 여왕이 상속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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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엘리자베스 여왕 (우) 마리나 공주

어떤 사람들은 메리 왕비가 왜 <블라디미르 티아라>를 며느리 마리나 공주가 아닌, 손녀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남겼는지 의문을 표하더고요. <블라디미르 티아라>의 원주인인 미헨 대공비의 손녀가 마리나 공주였고, 그녀에게 상속했으면 더 의미가 있었을 거라고 하면서요. 하지만 메리 왕비는 <블라디미르 티아라>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고, 티아라를 방계인 마리나 공주보다는 직계가 물려받아서 계속 영국 왕실에 남아있길 바랬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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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여왕 (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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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미국 국빈 만찬 참석한 엘리자베스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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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네팔 방문한 엘리자베스 여왕

제작된 지 한 세기 이상이 된 <블라디미르 티아라>는 엘리자베스 여왕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점점 상태가 안 좋아졌고, 1988년 결국 여왕은 왕실 보석상 가라드에게 티아라의 수리를 맡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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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중국 국빈 만찬 참석한 엘리자베스 여왕

가라드는 <블라디미르 티아라>의 프레임을 금과 은으로 완전히 다시 제작하였습니다.층 더 견고해진 티아라는 다시 여왕을 빛내주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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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에스토니아 국빈 만찬 참석한 엘리자베스 여왕

엘리자베스 여왕은 <블라디미르 티아라>에 보통 진주나 에메랄드 드롭을 꼭 달지만 위 사진처럼 드롭이 안 달린 버전을 착용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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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개인 비서인 안젤라 켈리가 저술한 'Dressing the Queen'에서는 <블라미르 티아라>의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는데요.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블라디미르 티아라>의 진주, 에메랄드가 하나씩 번호가 써진 주머니에 보관된다는 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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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에메랄드의 모양이나 크기가 각각 다르다 보니 하나의 스톤당 번호가 매겨져서 티아라에 달 때 순서가 엇갈리는 걸 방지하는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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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드롭이 어떻게 달리는지도 알려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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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리투아니아 국빈 만찬 참석한 엘리자베스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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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미국 국빈 만찬 참석한 엘리자베스 여왕

러시아 왕실 보석들은 혁명 때 국외로 많이 반출되었고, 보통 해체되거나 행방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화려하기로 유명한 러시아 보석을 이렇게 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어요☺

 

 

 

 


𝑽𝒍𝒂𝒅𝒊𝒎𝒊𝒓 𝑻𝒊𝒂𝒓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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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미르 티아라>의 소유자

1. 미헨 대공비

2. 옐레나 여대공 (1920년 상속)

3. 메리 왕비 (1921년 구입)

4. 엘리자베스 여왕 (1953년 상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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