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덴마크 크리스티안 9세의 손자인 비고 왕자는 뉴욕 출신 엘레노어 그린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엘레노어는 미국 최초로 증기기관차 엔진을 발명한 피터 쿠퍼의 증손녀이자 뉴욕 시장을 역임했던 아브람 휴잇의 손녀였죠. 가난한 왕족과 부유한 상속녀의 만남은 당시 흔한 조합이었으나 덴마크 왕실은 귀천상혼한 왕족에게 계승권과 왕족의 지위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엘레노어를 택한 비고 왕자는 결국 계승권을 박탈당했고, 귀천상혼한 왕족들에게 주어지는 로센보리 백작위를 수여받았습니다. 비록 계승권은 없어도 비고 왕자 부부는 늘 환영받는 왕실 일원이었고, 이는 보석에 대한 열정이 있던 엘레노어에게 수많은 왕실 행사에 반짝이며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1930년대 초반, 비고 왕자는 덴마크 왕실 보석상 드레드테드에게 아내를 위한 티아라를 주문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위 <로센보리 코코쉬닉 티아라>는 전형적인 코코쉬닉(러시아의 전통 머리 장신구; 스타일이 매우 다양하지만 넓은 부채꼴 모양이 가장 보편적임) 스타일의 티아라였죠. 19세기 러시아 궁정에서 시작된 코코쉬닉 열풍은 당시 온 유럽을 휩쓸었는데, 그 인기는 영국의 알렉산드라 왕비까지 코코쉬닉 스타일의 티아라를 따라 소유할 정도였습니다. <로센보리 코코쉬닉 티아라>는 유행이 20세기까지 계속되었다는 증거 중 하나였고요.
코코쉬닉에서 영감을 받은 <로센보리 코코쉬닉 티아라>에는 별도로 탈부착이 가능한 다이아몬드 리비에르(오른쪽)가 상단에 장식돼있어 목걸이로도 착용이 가능했습니다.
비고 왕자비는 1935년 덴마크 왕세자의 웨딩 무도회에서 <로센보리 코코쉬닉 티아라>를 착용했습니다(왼쪽). 1957년에는 영국 국빈 만찬에 참석하는 앤 왕자비에게 자신의 티아라를 빌려주기도 했죠(오른쪽). 참고로 앤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외삼촌인 존 보우스-라이언의 차녀입니다. 그녀는 두 번의 결혼을 했는데, 첫 번째 결혼은 5대 리치필드 백작 패트릭 존 앤슨과, 그와 이혼 후에는 덴마크의 게오르그 왕자(비고 왕자의 조카)와 재혼했죠. 앤은 왕족이 아닌 귀족가의 영애였기 때문에 앤과 귀천상혼한 게오르그 왕자 또한 비고 왕자와 같이 계승권과 왕족 지위를 박탈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왕족의 지위를 중요시 여겼던 게오르그 왕자는 덴마크 프레데리크 9세에게 지위를 유지하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영국 조지 6세까지 처조카인 앤을 위해 부탁하자 프레데리크 9세는 그 요청을 받아들였고, 앤은 왕족과 동등한 지위로 간주돼 왕자비(princess)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앤은 공식적으로 프린세스 인정을 받아 덴마크의 앤 왕자비로 불렸지만, 엘레노어는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남편의 칭호를 따라 '비고 왕자비, 로센보리 백작부인'으로 불렸음)
비고 왕자 부부에게는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1966년, 엘레노어 사후 티아라는 큰 동서인 덴마크의 마르가레타 왕자비가 물려받았습니다. 마르가레타 왕자비는 스웨덴의 공주이자 앞서 언급했던 게오르그 왕자의 모친이었죠. 1977년, 마르가레타 왕자비가 사망한 후에는 장남 게오르그 왕자가 아닌 차남 플레밍 백작이 <로센보리 코코쉬닉 티아라>를 물려받았습니다. 플레밍은 1949년, 루스 닐슨이라는 평민 여성과 귀천상혼을 하면서 프린스(prince) 지위를 박탈당한 상태였습니다. 형 게오르그 왕자와는 달리 그는 지위에 연연하지 않았고, 귀천상혼한 왕족들에게 주어지는 로센보리 백작위를 수여받았습니다.
루스 백작부인은 인상적인 보석 컬렉션을 소유한 걸로 유명했는데, 대부분이 시어머니 마르가레타 왕자비와 남편의 부유한 숙모 비고 왕자비가 물려준 것들이었습니다. <로센보리 코코쉬닉 티아라>도 그중 하나였죠.
플레밍 백작의 이모가 노르웨이의 메르타 왕세자비였기 때문에, 백작 부부는 덴마크 왕실 행사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왕실 행사에도 자주 참석했습니다. 2002년 열린 노르웨이 메르타 공주의 결혼식에도 함께 참석했죠. 그러나 결혼식이 있고 얼마 안 있어 플레밍 백작은 갑작스럽게 병에 걸렸고,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홀로 남은 루스 백작부인은 이후에도 크고 작은 왕실 행사에 얼굴을 비췄는데요. 때론 함께 왕실 행사에 참석하는 그녀의 자녀들에게 보석을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2004년, 루스의 큰며느리인 유타 백작부인(위 사진)이 덴마크 왕세자의 결혼식에서 <로센보리 코코쉬닉 티아라>를 빌려 착용한 적이 있었죠.
2010년, 루스 백작부인이 85세를 일기로 사망하자 <로센보리 코코쉬닉 티아라>는 막내딸 데지레 여백작이 물려받았습니다. 데지레는 유서 깊은 티아라를 이미 하나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가 물려준 <로센보리 코코쉬닉 티아라>를 팔기로 결정했죠.
<로센보리 코코쉬닉 티아라>는 2012년, 스웨덴 경매 회사 부코스키에 올라왔지만 판매에 실패했고, 이후 제네바 소더비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이번에는 성공적으로 낙찰되었는데, 낙찰금액은 예상 낙찰가의 두 배인 275,000달러(한화 약 3억 7천만 원)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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𝑹𝒐𝒔𝒆𝒏𝒃𝒐𝒓𝒈 𝑲𝒐𝒌𝒐𝒔𝒉𝒏𝒊𝒌 𝑻𝒊𝒂𝒓𝒂
<로센보리 코코쉬닉 티아라>의 소유자
1. 엘레노어, 로센보리 백작부인
2. 덴마크 마르가레타 왕자비 (1966년 상속)
3. 플레밍, 로센보리 백작 (1977년 상속)
4. 루스, 로센보리 백작부인 (2002년 상속)
5. 데지레, 로센보리 여백작 (2010년 상속)
6. 익명의 구매자 (2014년 낙찰)
<로센보리 코코쉬닉 티아라>의 착용자

1. 엘레노어, 로센보리 백작부인
2. 덴마크 앤 왕자비
3. 루스, 로센보리 백작부인
4. 유타, 로센보리 백작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