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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YAL & NOBLE/노르웨이

목걸이로 착용할 때가 더 예쁜 티아라 | 비프테 티아라 | 노르웨이 왕실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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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테 마리 왕세자비

마약중독에 빠졌던 싱글맘 메테 마리와 노르웨이 왕세자의 로맨스는 왕실에 그닥 관심 없는 우리나라에서도 소식이 들려올 정도로 세계적인 이슈였기 때문에 아마 아시는 분들도 많을 거예요. 메테 마리의 난잡한 과거에도 불구하고 노르웨이 하랄 5세와 소냐 왕비는 아들의 선택을 지지했고, 새로운 왕실 가족이 된 메테 마리에게 특별한 티아라를 선물하였습니다.

 

그 티아라는 바로 위 사진에서 메테 마리가 착용한 목걸이인데요! 목걸이로도 티아라로도 착용이 가능한 <비프테 티아라>는 노르웨이 글뤽스부르크 왕조의 초대 왕비 모드가 결혼 선물로 받은 티아라입니다. 이 글에서 모드가 왕비가 된 과정을 간단히 설명해 보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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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라 왕세자비와 딸 모드 공주

1869년, 영국 에드워드 왕세자와 왕세자비였던 덴마크 공주 알렉산드라 사이에서 막내딸 모드가 태어났습니다. 모드는 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많은 간섭을 받은 오빠들과는 달리 왕세자 부부 주도의 자유로운 교육 속에서 성장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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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모드 공주, 루이즈 공주, 빅토리아 공주

모드에게는 위로 두 언니가 있었는데, 이들 자매는 낯선 이들에게는 수줍음이 많았지만 자기들끼리 있을 때는 명랑하고 장난기가 많았던 공주들이었다고 해요. 결혼 적령기의 모드 공주는 새언니 메리 왕세손비의 남동생 테크의 프란시스와 결혼하기를 원했지만, 프란시스는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고, 결국 그녀는 외삼촌 프레데리크 8세의 차남인 덴마크 칼 왕자와 1896년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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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왕자와 모드 공주의 결혼사진

 

모드 공주는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이자 에드워드 7세의 막내딸이었고, 칼 왕자 또한 덴마크 프레데리크 8세의 차남이었기에 그들의 결혼식에는 많은 결혼 선물들이 쏟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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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당시 신문에 실린 선물 일러스트 (우) 비프테 티아라

그중에는 로스차일드 일가가 선물한 다이아몬드 티아라도 있었는데, 그 모양이 마치 부채 같아 비프테(vifte; 노르웨이어로 부채를 의미함) 티아라로 불렸죠. 당시 기사에 따르면 알프레드 로스차일드가 다이아몬드를 직접 선택했다고 해요.

모드 공주와 남편 칼 왕자는 둘 다 방계였고, 왕위와는 거리가 있었던 삶이었습니다. 칼 왕자는 덴마크 해군 장교로 복무하며 모드 공주와 코펜하겐에서 생활하였고, 자주 영국을 방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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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의회 개회식에 참석한 모드 공주와 칼 왕자

 

1901년, 부부는 영국 의회 개회식에 함께 참석했습니다. 개회식이 열리기 약 한 달 전 빅토리아 여왕이 사망했기 때문에 모드 공주는 상복과 함께 <비프테 티아라>를 착용했죠.

<비프테 티아라>가 로스차일드 일가의 결혼 선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빅토리아 여왕이 손녀에게 생일선물로 준 티아라로 알려져 있었어요. 특히 빅토리아 여왕의 사망 후 모드 공주가 <비프테 티아라>를 착용하자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그녀가 준 선물을 착용한 거라고 생각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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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회식 전 식사하는 모드 공주

 

알고 보니 그냥 작고, 심플한 <비프테 티아라>가 애도 기간에 적합해서 착용한 거였네요ㅋㅋㅋ

 

1905년 모드 공주와 칼 왕자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줄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이 해체되면서 칼 왕자가 노르웨이의 새 국왕으로 선출된 것이죠. 칼 왕자가 국왕으로 추대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내인 모드 공주가 당시 세계를 호령하던 대영제국의 국왕, 에드워드 7세의 딸이었고, 그도 덴마크의 왕자이자 스웨덴 국왕의 외손자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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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콘 7세와 모드 왕비의 대관식 사진

 

이름을 노르웨이식 이름인 호콘으로 변경한 칼 왕자는 호콘 7세로, 모드 공주는 모드 왕비로 불렸습니다. 모드 왕비는 노르웨이로 올 때, <비프테 티아라>를 포함한 많은 보석들을 가지고 왔는데, 대부분의 보석들이 노르웨이 왕실 일원들에 의해 현재도 착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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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즉위 25주년 기념 연회에서 비프테 티아라를 착용한 모드 왕비와 호콘 7세

 

모드 왕비는 몸이 많이 약한 편이었고, 1938년, 수술을 받기 위해 영국을 방문합니다. 영국을 방문한 김에 보석상에 들려 보석들의 수리, 세척을 맡기기도 하였죠. 그러나 수술 후 모드 왕비는 심장마비로 사망하였고, 갑작스러운 왕비의 죽음에 당황한 사람들은 일단 그녀의 보석들을 영국 윈저성에 임시 보관하기로 합니다. 그러나 곧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보석들은 한동안 계속 윈저성 금고에 보관되었죠. 1953년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을 계기로 모드 왕비의 보석들은 무사히 노르웨이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드 왕비의 <비프테 티아라>는 한동안 가족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죠. 아마 사이즈가 좀 애매해서? 그런 것 같아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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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프테 티아라를 착용한 소냐 왕세자비

1968년 하랄 왕세자와 결혼해 노르웨이의 왕세자비가 된 소냐는 시할머니 모드 왕비의 <비프테 티아라>를 착용하였지만, 취향에 안 맞았는지 자주 착용은 안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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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1975년 학회 만찬 (우) 1978년 오스트리아 국빈 만찬에 참석한 소냐 왕세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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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연회에 참석한 소냐 왕비

 

소냐 왕비는 아주 가~끔 착용하던 <비프테 티아라>를 2001년 며느리가 될 메테 마리에게 결혼 선물로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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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테 마리는 자신의 결혼 전야 갈라에서 <비프테 티아라>를 목걸이로 착용하였습니다. 수수한 화장과 함께 <비프테 티아라>를 목걸이로 착용한 그녀의 선택은 정말 탁월했고, 마약과 파티에 찌들었던 사람이라고는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우아해 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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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불가리아 국빈 만찬에서 메테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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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하랄 5세와 소냐 왕비의 80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왕실 일원들은 모두 오슬로에 모였고, 메테 마리<비프테 티아라>를 이날 처음 티아라로 착용했습니다. 모드 왕비나 소냐 왕비처럼 정수리에 가깝게 착용하는 대신 올림머리 근처에 착용하면서 마치 헤어핀처럼 보이게 했죠. <비프테 티아라>는 목걸이 버전일 때가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착용하는 것도 정말 괜찮은 거 같아요. 티아라가 작아서 정석대로 착용하면 뭔가 옹졸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앞으로도 이렇게 자주 착용해 줬으면 좋겠어용ㅎㅎ (하지만 이날이 <비프테 티아라>를 착용한 마지막 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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𝑽𝒊𝒇𝒕𝒆 𝑻𝒊𝒂𝒓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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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프테 티아라>의 소유자

1. 모드 왕비

2. 올라프 왕세자/메르타 왕세자비 (1938년 상속, 1953년 회수)

3. 소냐 왕비 (1968년 상속)

4. 메테 마리 (2001년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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