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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YAL & NOBLE/기타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약혼반지 (2) - 재키가 단 두 번만 착용했던 <레소토 III 다이아몬드 반지>

▼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약혼반지, 1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약혼반지 (1) - 시아버지가 직접 골라준 <반클리프 아펠 에메랄드 약혼반지>

재클린 케네디(애칭은 재키)는 미국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젊고 매력적인 퍼스트레이디였습니다. 그녀의 우아하고 세련된 패션 스타일은 '재키 스타일'이라고 불리며 오늘날까지도 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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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eral
장례식에서 재클린과 아이들, 1963년

암살을 눈앞에서 목격했음에도 바로 장례 준비를 주도할 만큼 재클린은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였습니다. 남편에게 링컨과 같은 영웅의 장례식을 치러주고 싶었던 그녀는 여러 위인들의 장례식 기록을 참고해 기수가 없는 말부터, 아버지의 관에 경례하는 어린 아들의 모습, 묘지 앞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까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연출해냈죠. 또한 보안을 염려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동생 로버트, 에드워드와 함께 관 뒤를 따라 걸었는데, 그 모습은 미국인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상징적인 순간으로 남아있답니다😌

 

 

 

 

jackie kennedy
공연장 백스테이지에서 재클린, 1965년

이후 백악관을 나온 재클린은 케네디 대통령의 유산을 기리는 각종 추모식과 행사에 참석하면서 조금씩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시아버지가 직접 골라준 <반클리프 아펠 약혼반지>도 가끔 착용하였죠. 당시 재클린은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미망인이었고, 어딜 가든 환영받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1968년, 수많은 대중들이 그녀를 비난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바로 당대 최고의 갑부이자 선박왕이었던 그리스의 사업가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와의 재혼을 발표했기 때문인데요. 그는 재클린보다 23살이나 많았고, 키는 20cm나 더 작았으며 평판 또한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전 퍼스트레이디의 재혼 소식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wedding
결혼식 날, 재클린과 오나시스, 1968년

오나시스와의 결혼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재클린의 '선택'이었습니다. 남편의 죽음으로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던 재클린은 당시 시동생 로버트 케네디까지 암살당하면서 미국이 더 이상 자신과 자녀들에게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존경받던 영부인을 트로피 와이프로 원했던 오나시스가 충분한 재력을 내세우며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고 약속하자 그를 선택한 것이죠. 그러나 둘의 결혼 소식에 재클린의 여동생 리 라지윌은 큰 충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couple
오나시스와 리 라지윌, 1963년

원래 오나시스는 그녀의 연인이었으며, 언니 재클린에게 처음 그를 소개해 준 것도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리는 결국 둘의 결혼을 받아들였지만 훗날 언니를 오나시스에게 소개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하네요.

 

 

 

 

diamond
레소토 III 다이아몬드

오나시스는 재클린에게 약혼반지로 40.42캐럿의 <레소토 III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했습니다. 이 다이아몬드는 1967년 발견된 601캐럿짜리 거대한 레소토 다이아몬드 원석의 일부로, 해당 원석은 해리 윈스턴에 의해 18개의 다이아몬드로 연마되었습니다. 오나시스가 그중 하나인 <레소토 III 다이아몬드>를 재클린에게 선물하기 위해 구매한 것인데, 착용하기 불편할 정도로 컸기 때문에 재클린은 단 두 번만 착용해 보고 평생 은행 금고에 보관해두었다고 합니다. 착용 사진도 없더라고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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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즈 가늠을 위해 가져온 38캐럿 다이아몬드, 레소토 III는 이거보다 2캐럿 더 무거워요ㄷ

참고로 레소토 다이아몬드 원석은 여성이 발견한 최초이자 유일한 메이저급 원석(당시 기준 세계에서 7번째로 큰 다이아몬드 원석)으로 알려져 있어요..!

 

 

 

 

diamond
레소토 다이아몬드 원석

1967년 남아프리카 레소토에서 광부의 아내였던 어네스틴 라마보아가 우연히 진흙으로 덮인 원석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의 빛이 분명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다이아몬드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해요. 예상대로 원석은 갈색을 띤 불규칙한 모양의 601캐럿짜리 거대한 다이아몬드 원석이었죠. 어네스틴은 원석을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은 채 집에서 남편이 오길 기다렸고, 남편이 돌아오자마자 구매자를 찾기 위해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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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소토 다이아몬드 원석을 들고 포즈를 취한 라마보아 부부, 1967년

4일 밤낮을 걸어 도착한 수도에서 라마보아 부부는 한 네덜란드 업자에게 약 30만 달러(오늘날 가치로 약 36억 원)에 레소토 원석을 판매했습니다. 이를 해리 윈스턴이 구매가격의 두 배 정도였던 약 62만 달러에 다시 매입하면서 당시 유명했던 대부분의 원석들처럼 레소토 원석 역시 그의 차지가 되었죠. 레소토 원석을 소개하는 기자회견 자리에는 원소유자였던 라마보아 부부도 초청을 받아 뉴욕 5번가에 위치한 해리 윈스턴을 방문하기도 했답니다. 레소토 다이아몬드 원석은 이후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뉴욕 자연사 박물관 등에서 잠시 전시되다가 발견 1년 후인 1968년, 여러 논의 끝에 252.50캐럿에 달하는 18개의 다이아몬드로 연마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대중들이 볼 수 있도록 생중계로 공개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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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다이아몬드인 레소토 I 다이아몬드 반지

오나시스가 구매한 40.42캐럿의 <레소토 III 다이아몬드>는 세 번째로 큰 사이즈였고, 위로 더 큰 사이즈였던 71.73캐럿의 레소토 I 다이아몬드와 60.67캐럿의 레소토 II 다이아몬드는 마퀴즈컷이었던 <레소토 III 다이아몬드>와는 달리 에메랄드컷으로 연마되었습니다. 세 개의 다이아몬드 모두 반지로 제작되어 1970년까지 개인 구매자들에게 판매되었는데, 2008년에 레소토 I 다이아몬드 반지가 소더비 경매에 등장했죠. 소유자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1969년 구매자와 동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매 예상가는 최대 460만 달러를 웃돌았는데, 엄청난 크기와 탁월한 광택, 뛰어난 대칭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팔리지 않았다고 하네요😅

 

 

 

 

jackie kennedy
오나시스와 재클린, 1970년

재혼 후 재클린은 오나시스 소유의 개인 섬과 뉴욕을 오가며 생활하였지만 1975년 오나시스가 암으로 사망하면서 결혼생활은 6년 반 만에 끝이 나버렸습니다. 그러나 그전부터 둘은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진 사이였는데요. 재클린의 사치와 케네디 가문의 냉대에 직면한 오나시스가 전 연인이었던 마리아 칼라스를 다시 찾으면서 공개적으로 바람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죠. 1973년에는 전처소생의 아들 알렉산더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것을 두고 재클린이 저주를 받았다며 탓하기까지 하면서 둘의 사이는 완전히 틀어져 버렸습니다. 오나시스는 재클린과 이혼을 결심했으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돼 1975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그는 5억 달러가 넘는 유산을 딸 크리스티나에게만 남겼는데요. 재클린에게는 유산을 한 푼도 남기지 않았지만 2년에 가까운 소송 끝에 재클린은 약 2600만 달러를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jackie kennedy
모리스 템펠스만과 재클린, 1986년

사별 후 뉴욕으로 돌아온 재클린은 출판 편집자로 일하면서 각종 저술 활동과 자선 사업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항상 벨기에 출신의 유태인 보석상인 모리스 템펠스만이 있었죠. 둘은 20년 넘게 알고 지내온 친구 사이였지만 재클린이 뉴욕으로 돌아온 뒤부터 가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템펠스만은 재클린을 마치 전리품처럼 여겼던 오나시스와는 달리 그녀를 과시하지 않았으며 묵묵히 함께하는 것만으로 만족해하는 남자였죠. 그들은 뉴욕의 고급 아파트에서 함께 동거하며 살았지만 평생 결혼하지는 않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클린의 가족들과 주변 친구들 모두 그를 그녀의 남은 인생 동안 함께할 평생의 반려자로 여겼습니다. 1994년, 암 진단을 받았던 재클린은 가족과 연인 템펠스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향년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funeral
장례식 날, (왼쪽부터) 캐롤라인, 케네디 주니어, 캐롤라인 남편 슐로스버그, 템펠스만, 1994년

보석, 가구, 예술품 등 재클린이 남긴 유품들은 그녀의 유언에 따라 가족과 친구, 보스턴에 위치한 존 F. 케네디 도서관 등에게 나누어졌습니다. 물론 상당수를 딸 캐롤라인과 아들 케네디 주니어가 물려받았는데, 그들은 자신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 유품들을 경매를 통해 판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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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에 올라온 재클린 소유의 보석들, 1996년

1996년, 소더비 경매에 올라온 1,300여 개의 물품 중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을 보였던 건 오나시스가 약혼반지로 선물한 위 <레소토 III 다이아몬드 반지>였습니다. 경매 예상가였던 50만 달러를 훨씬 뛰어넘는 약 259만 달러(오늘날 가치로 약 66억 원)에 낙찰되면서 가장 비싼 낙찰가를 기록하였죠. 낙찰자는 미국 식품회사 하인즈의 회장 토니 오라일리로, 아내를 위해 구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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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일리 회장과 레소토 III 다이아몬드 반지를 착용한 아내 크리스 여사, 2001년

소식통에 의하면, 오라일리 회장은 아내 크리스가 오나시스와 같은 그리스 해운 가문 출신이었기 때문에 <레소토 III 다이아몬드 반지>가 상징적으로 느껴져 구매를 결심했다고 합니다. 마침 재클린도 아일랜드계였고, 오라일리 회장도 아일랜드인이라서 동질감?을 느꼈나 본데요ㅋㅋ 근데 최근 근황을 보니 거의 파산하셨더라고요.. 크리스 여사도 작년에 돌아가셨고요. 아마 곧 경매에서 <레소토 III 다이아몬드 반지>를 볼 수 있을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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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클리프 아펠 에메랄드 약혼반지>는 존 F. 케네디 도서관에 기증되었고, 가끔 전시회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근데 가장 최근 전시가 2003년 케네디 결혼 50주년 특별전시회...) 시아버지가 골라준 거지만 그래도 이 반지가 재클린에게 가장 의미 있는 보석이 아닐까 해요. 제가 이 글에서 따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재클린의 인생엔 수많은 남성들이 스쳐 지나갔고, 그중 케네디만이 그녀가 바라던 모든 걸 채워줄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에겐 오나시스에게 없는 명예와 유머가, 템펠스만에게 없는 재력과 카리스마가 있었죠. 그런 케네디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했던 재클린에게 있어서 그의 선물인 <반클리프 아펠 약혼반지>는 두 사람의 다사다난했던 관계의 시작을 의미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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𝑱𝒂𝒄𝒒𝒖𝒆𝒍𝒊𝒏𝒆 𝑲𝒆𝒏𝒏𝒆𝒅𝒚 𝑶𝒏𝒂𝒔𝒔𝒊𝒔'𝒔 𝑬𝒏𝒈𝒂𝒈𝒆𝒎𝒆𝒏𝒕 𝑹𝒊𝒏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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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클리프 아펠 에메랄드 반지>의 소유자

1. 재클린 케네디

2. 존 F. 케네디 도서관 (1994년 기증)

 

<레소토 III 다이아몬드 반지>의 소유자

1. 재클린 케네디

2. 딸 캐롤라인과 아들 케네디 주니어 (1994년 상속)

3. 토니 오라일리 (1996년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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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클리프 아펠 에메랄드 반지>의 착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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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클린 케네디

 

<레소토 III 다이아몬드 반지>의 착용자

 

1. 크리스 오라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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