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까르띠에의 역작 중 하나로 불리는 <에식스 티아라>는 1902년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 날 아내 아델이 착용할 새 티아라가 필요했던 에식스 백작의 의뢰로 제작되었습니다. 말레이시아의 머리장식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된 <에식스 티아라>에는 약 156캐럿에 이르는 759개의 브릴리언트컷 다이아몬드와 289개의 로즈컷 다이아몬드가 세팅되었으며 사용된 모든 다이아몬드는 전부 에식스 백작이 제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마터면 아델은 남편의 선물인 <에식스 티아라>를 착용하지 못할 뻔했답니다. 대관식 며칠 전 파리에서 대관식 날 입을 드레스를 피팅 해보다가 갑자기 쓰러지고 만 것이죠. 황급히 영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겨우 건강을 회복해 대관식에 참석했지만 당시 기사에 따르면 벨벳 로브의 무게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연약해 보였다고 해요. 그래도 미인으로 유명했던 그녀의 명성답게 어깨에 닿는 긴 컬과 티아라로 완성되는 백작부인의 우아함을 칭송하는 언론도 있었죠. (아쉽게도 아델의 <에식스 티아라> 착용 사진은 남아있지 않습니다ㅠㅠ)
1916년 에식스 백작이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아델은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자산들을 매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에식스 티아라>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죠. 1922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아델은 5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재산은 두 딸 아이리스와 조안이 나누어 물려받았습니다.
1953년 윈스턴 처칠의 아내, 클레멘타인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에서 대여받은 <에식스 티아라>를 착용했습니다. 처칠의 막내딸 메리 솜즈가 저술한 클레멘타인 처칠의 전기에 따르면, 어머니의 친구가 대관식을 위해 티아라를 빌려주었다고 언급되어 있죠. 그 친구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클레멘타인은 아델의 친구였고, 아마 아델 사후에도 계속 에식스 백작가와 교류하며 아델의 두 딸 중 한 명으로부터 티아라를 대여받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1957년이 돼서야 <에식스 티아라>를 착용한 아델의 둘째 딸 조안의 모습이 포착되었죠! 이후 티아라는 익명의 구매자에게 팔렸다가 1990년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습니다. 티아라는 한 보석상에게 낙찰되었지만 다시 까르띠에에 의해 재인수되면서 까르띠에 컬렉션의 일부가 되었죠.
까르띠에는 1996년 결혼하는 루마니아 미하이 1세의 장녀 마르가레타 왕세녀에게 <에식스 티아라>를 대여해 주었습니다. 루마니아 왕정은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1947년 폐지되었지만 마지막 국왕이었던 미하이 1세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매우 높은 편이었고, 1992년 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미하이 1세와 그 가족들은 루마니아로 함께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미하이 1세는 국가 원로급 대우를 받으며 옛 왕궁에서 거주하다 2017년 사망했습니다.
루마니아는 장기적으로 왕정 복고 계획이 있기 때문에 빠르면 현재 왕실의 수장인 마르가레타가 왕이 될 수도 있겠지만 워낙 경제가 안 좋아서... 과연 가능할지??
까르띠에는 <에식스 티아라>를 영국 보그에 대여하기도 하고~
행사에서 브랜드 홍보용으로 사용하기도 하면서~ <에식스 티아라>는 까르띠에의 대표 작품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에식스 티아라>는 2016년 W 매거진의 커버스타가 된 리한나에 의해 착용되면서 다시 한번 존재감을 드러냈죠..!
2번의 대관식과 팝스타 리한나를 거쳤던 <에식스 티아라>는 현재도 까르띠에 컬렉션의 일부이며,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까르띠에 전시회에서 지금도 전시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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𝑪𝒂𝒓𝒕𝒊𝒆𝒓 𝑬𝒔𝒔𝒆𝒙 𝑻𝒊𝒂𝒓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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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띠에 에식스 티아라>의 소유자
1. 에식스 백작부인 아델
2. 레이디 조안 (1922년 상속)
3. 익명의 소유자
4. 보석상 (1990년 낙찰)
5. 까르띠에 (1990년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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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띠에 에식스 티아라>의 착용자 (소유자 제외)
1. 클레멘타인 처칠 (1953년 대관식)
2. 루마니아 마르가레타 왕세녀 (1996년 결혼식)
3. 2001년 보그 12월 호 모델
4. 리한나 (2016년 W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