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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YAL & NOBLE/네덜란드

막시마 왕비가 착용한 네덜란드 왕실 브로치 | 엠마 왕비의 스토머커 | 네덜란드 왕실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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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마 왕비

화려한 보석이 잘 어울리는 네덜란드 막시마 왕비는 종종 오랫동안 보이지 않았던 보석을 착용함으로써 모두를 놀라게 하곤 하는데요ㅎㅎ 위 다이아몬드 브로치도 그중 하나로, 네덜란드 빌럼 3세의 왕비 엠마가 결혼 선물로 받았던 스토머커(궁중 드레스 가슴 장식)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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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럼 3세

1877년 빌럼 3세는 소피아 왕비와 사별 후 재혼하기 위해 유럽 여기저기 혼담을 넣었지만, 난봉꾼, 호색한 등 온갖 안 좋은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그와 결혼해 주는 여성은 없어 보였습니다. 그는 심지어 예순을 갓 넘긴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여성들에게만 청혼을 했죠. 빌럼 3세와 결혼해 줄 사람이 있을까 온 유럽이 궁금해하던 중에 그의 청혼을 받아주는 여성이 등장합니다...! 바로 독일의 작은 공국 발데크-피르몬트의 공녀 엠마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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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왕비와 빌럼 3세

처음에 빌럼 3세는 엠마의 언니 파울리네 공녀에게 청혼을 했지만 거절당했고, 그 후 동생 엠마에게 청혼을 하였습니다. 엠마의 부모는 딸이 왕비가 되길 내심 바라고 있었고, 보수적인 집안에서 한평생 살아왔던 엠마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며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습니다. 1879년 결혼할 당시 엠마는 20세, 빌럼 3세는 41살로 그들의 나이차는 무려 41살이었습니다ㄷㄷ 빌럼 3세가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두 아들 모두 엠마보다 나이가 많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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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선물 일러스트

모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네덜란드로 돌아온 엠마는 네덜란드 국민들로부터 결혼 선물로 다이아몬드 리비에르 목걸이와 <스토머커>를 받았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선물이었던 <스토머커>는 네오-그리스식 스타일로 제작되었으며 214개의 브릴리언트컷 다이아몬드와 센터 스톤으로는 30캐럿의 옐로 다이아몬드가 세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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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왕비의 스토머커

19세기 네덜란드에는 왕실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 위해 특별한 날에 전 국민이 돈을 모금하여 왕실에 선물을 보내는 관습이 도입되었고, 엠마는 선물을 받은 최초의 왕비였습니다. 빌럼 3세와 엠마가 약혼하자 국가위원회가 구성되어 모금을 받기 시작했지만, 당시 경제가 침체된 상태였고, 꽤 인기 있었던 소피아 전 왕비가 불과 1년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모금 금액은 예상보다 적었다고 해요. 그래서 <스토머커>의 센터 스톤으로 다소 저렴한 옅은 옐로 다이아몬드를 선택했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아무튼 엠마 왕비는 할아버지뻘 빌럼 3세를 보살피며 꽤 평탄한 결혼생활을 유지했고, 결혼 1년 후 딸 빌헬미나를 낳았습니다. 빌헬미나가 태어났을 때는 방탕한 생활로 건강을 해쳤던 빌럼 왕세자가 사망한 후라서 그의 동생인 알렉산드르가 후계자였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빌헬미나가 4살이 되었을 때 발진티푸스에 걸려 사망하면서 빌헬미나는 왕의 유일한 자녀로서 후계자가 되었죠. 네덜란드 의회는 빌헬미나 왕세녀가 아직 어리고, 빌럼 3세의 나이가 언제 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기 때문에 엠마 왕비에게 섭정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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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머커를 착용한 엠마 왕비

1890년 빌럼 3세가 사망하면서 10살이었던 딸 빌헬미나가 여왕으로 즉위했지만,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엠마 왕대비가 섭정을 하였습니다. 엠마는 네덜란드의 입헌군주제 확립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많은 정치인들은 이런 그녀의 행보를 존경했다고 합니다. 빌헬미나가 성인이 되자 엠마는 섭정 지위에서 내려왔고, 1934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스토머커>는 딸 빌헬미나 여왕이 물려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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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머커를 착용한 빌헬미나 여왕

빌헬미나 여왕을 시작으로 네덜란드는 여왕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재위 기간 동안 그녀는 입헌군주제를 확립했으며, 2차 대전 발발 후 네덜란드가 독일 치하에 들어가자 영국에 망명정부를 세우고 강력한 저항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네덜란드 국민들은 정신적 지주인 여왕을 보며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나치 독일이 패망하자 여왕은 국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네덜란드로 복귀했죠. 전쟁 당시 빌헬미나 여왕이 보여준 저항 정신은 오늘날 네덜란드에서 가장 존경받는 군주로 그녀가 손꼽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948년 건강이 악화된 빌헬미나 여왕은 딸 율리아나에게 왕위를 양위하면서 <스토머커>를 포함한 자신의 보석들도 물려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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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미국 방문한 율리아나 여왕

율리아나 여왕은 1968년 오라녜나사우 가족 재단을 설립하고, 재단에 <스토머커>를 포함한 그녀 소유의 보석들과 수집품들을 기부했습니다. (오라녜나사우는 현 네덜란드 왕가의 이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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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독일 방문한 율리아나 여왕

빌헬미나 여왕의 유일한 자녀로서 왕가의 재산을 온전히 물려받은 율리아나 여왕에겐 4명의 딸이 있었고, 법률상 그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상속해야 했습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보석들이 왕실을 벗어날 뿐만 아니라 해외로 팔릴 수 있다는 것을 시사했죠. 또한 상속받은 자녀들이 막대한 세금 폭탄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율리아나 여왕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재단을 설립했고, 재단의 보석들은 직계는 물론 방계까지 대여받아 착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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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국빈 연회에서 율리아나 여왕

1980년 율리아나 여왕은 그녀의 71번째 생일에 딸 베아트릭스에게 양위를 했습니다.

 

베아트릭스 여왕<엠마 왕비의 스토머커>를 공개적으로 착용한 적이 없는데요. 18세기에 시작된 스토머커 장식은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그 명맥이 이어져왔지만 이젠 예전처럼 그렇게 자주 착용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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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스토머커 (우) 2013년 국빈 만찬에서 베아트릭스 여왕

베아트릭스 여왕은 완전한 형태의 <스토머커>를 착용하는 대신 <스토머커>에 달린 드롭 펜던트를 귀걸이로 변형하여 종종 착용하였습니다. <스토머커>에 달린 3개의 드롭 펜던트와 센터 스톤 모두 탈부착이 가능해 귀걸이나 펜던트로 활용이 가능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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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리비에르에 스토머커 펜던트를 단 막시마 왕비

베아트릭스 여왕은 2013년 아들 빌럼 왕세자에게 양위하겠다는 발표를 했고, 퇴위 전날 열린 만찬에서 막시마 왕세자비<스토머커>의 센터 스톤을 펜던트로 착용했습니다. 센터 스톤은 옐로 다이아몬드이지만 색이 옅어가지고 옐로 다이아몬드처럼 안 보이네요...아쉽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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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벨기에 국빈 만찬에서 라우레틴 왕자비

막시마의 동서 라우레틴 왕자비<스토머커> 펜던트를 귀걸이로 착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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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포르투갈 방문한 막시마 왕비

<스토머커>에서 비교적 큰 드롭 펜던트는 이렇게 다른 브로치에 부착되기도 했어요! 사람들은 <엠마 왕비의 스토머커>가 귀걸이나 펜던트로 계속 활용되는 걸 보면서 혹시 아예 해체돼버렸나 걱정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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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국빈 만찬 참석한 막시마 왕비

드디어🎉 2018년 카보베르데 공화국 대통령을 위한 국빈 만찬에서 막시마 왕비는 약 반세기 만에 완전체로 <엠마 왕비의 스토머커>를 착용했습니다! 확실히 브로치로 착용하기에는 사이즈가 좀 큰데... 워낙 막시마가 큼직한 보석들을 자주 착용하기도 하고, 또 잘 어울려서 위화감이 없네요ㅋㅋㅋ 나중에 스토머커 정석대로 착용한 버전도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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𝑸𝒖𝒆𝒆𝒏 𝑬𝒎𝒎𝒂'𝒔 𝑺𝒕𝒐𝒎𝒂𝒄𝒉𝒆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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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왕비의 스토머커>의 소유자

1. 엠마 왕비

2. 빌헬미나 여왕 (1934년 상속)

3. 율리아나 여왕 (1948년 상속)

4. 오라녜나사우 가족 재단 (1968년 기부)

<엠마 왕비의 스토머커>의 착용자 (소유자 제외)

1. 막시마 왕비 (2018년 국빈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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